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문단 편집) === 결혼과 자녀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d0f11c3a8b0849847f1f5aee2afee7db.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fficial-Wedding-Portrait.jpg|width=100%]]}}}|| || {{{#fff '''약혼사진'''}}} || {{{#fff '''결혼사진'''}}} || 2003년,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평민 [[캐서린 미들턴]]을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후에 왕실 전기작가가 출간한 책에 따르면, 둘은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를 통해 이미 한 두번 만난 사이였다고 한다. 중간에 두번 헤어졌다 다시 재결합, 교제 7년 만인 2010년 11월 16일에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이때 언론에 결혼을 발표하면서 캐서린의 손가락에 끼워준 [[사파이어]] 반지는 바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하면서 끼워줬던 약혼반지였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윌리엄 결혼식1.jpg|width=100%]]}}}||{{{#!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윌리엄 결혼식2.jpg|width=100%]]}}}|| 2011년 4월 2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https://youtu.be/JjAjSRZogGg|#]] 결혼식은 [[성공회]]의 혼인감사성찬례로 거행되었고, [[BBC]] 등을 통하여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윌리엄에게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프레더릭]]에게 하사되었던 작위로, 아돌푸스 공작의 외아들이 국왕의 재가를 얻지 못한 [[귀천상혼]]을 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왕실에 병합되었다.], 스트래선 백작, 캐릭퍼거스 남작위를 수여했다. 공군 대위 신분이었기 때문에 결혼 예복으로 공군 예복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육군 아이리시 가드[* 아이리시 가드 연대의 명예 연대장 칭호를 보유하고 있다.] 연대의 붉은 예복을 입은 대신 가슴에 공군 헬기 조종사 휘장을 달았다. 영국에서 오랜만에 열리는 로열 웨딩인데다, 그 결혼의 신랑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남이기 때문에 그의 결혼식 일정이 정해지자 세계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다만 결혼식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넵튠 스피어 작전|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혼식에 대한 화제는 열흘도 되지 않아 묻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31210_081651.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44126699_2092958464241513_1913855792094295419_n.jpg|width=100%]]}}}|| || {{{#fff '''2023년 가족사진'''}}} || {{{#fff '''2023년 결혼 12주년에 공개된 사진'''}}} || 2012년 12월 4일, 캐서린 왕세손비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캐서린의 심한 [[입덧|임신오조]]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기 때문에 빠른 발표를 했다. 또한 [[호주]]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사칭하여 담당 [[간호사]]에게 [[입덧]]으로 입원한 왕세손비의 개인정보를 캐내어 방송해 버렸다. 결국 간호사가 그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해버려 마음 놓고 기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2013년 7월 22일, 윌리엄이 태어났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캐서린이 10시간의 산통 끝에 왕자를 순산했다. 왕자의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로 생후 이틀 만에 정해졌는데, 부친인 윌리엄이 생후 1주일, 조부인 찰스가 생후 1달 만에 이름이 지어진 걸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경우에 해당한다. 조지가 태어난지 1년 만인 2014년 7월 말부터 "왕세손비가 둘째를 임신했다, 성별은 딸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초로 저 내용의 기사를 낸 곳이 타블로이드지에 출처도 측근인지라 신빙성이 낮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초에 왕실이 "왕세손비가 임신 초기이며, [[입덧]]이 심해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켄싱턴 궁]]에서 요양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예상대로 2015년 5월 2일,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서열 4위의 딸을 순산했다. 이름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로 5월 4일 정해졌다. 샬럿은 2012년 제정 된 퍼스 협약에 이해 샬럿은 남동생이 태어나도 계승 순위에서 밀리지 않는다. 샬럿이 태어난지 2년 4개월이 경과한 2017년 9월 4일, 왕세손비가 셋째를 임신하였다는 영국 왕실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23일, 왕세손비가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서열 5위의 왕자를 순산했다. 이름은 '''[[루이 아서 찰스]]'''로 4월 27일에 발표되었다. 2022년 3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아 8일간 아내 [[캐서린 미들턴|캐서린 왕세손비]]와 함께 [[벨리즈]], [[자메이카]], [[바하마]]를 순방하였는데, 이 순방이 몇몇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영연방]]의 결속을 다지기는 커녕 역효과를 일으켰다. 이 나라들은 영국 왕실로 인해 [[식민지]]화 되어 고통을 받았던 [[카리브]] 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자메이카의 총리는 왕세손 부부 앞에서 대놓고 독립하겠다고 하였으며, 벨리즈 또한 독립의 의사를 내비쳤다. 윌리엄은 이례적으로 순방 이후에 성명을 발표하여 각 나라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서 엘리자베스 여왕 사후 여러 나라가 [[영연방]]을 이탈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22년 여름, 공식 거처를 [[켄싱턴 궁전]]에서 [[윈저]]의 애들레이드 코티지로 옮겼다.[* 런던 거주지는 [[켄싱턴 궁전]]으로 그대로 유지된다.] 캐서린의 친정과도 켄싱턴 궁전보다 더 가까운 위치다. 이유는 세 자녀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서이다. 이번 이사에 대해 검소하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이번이 부부의 4번째 거처라 국민들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사치라는 [[https://www.google.com/amp/s/mobile.newsis.com/view_amp.html%3far_id=NISX20220825_0001990114|비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